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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현의 보컬살롱] 김나영, '내 이야기'를 만들다아티클/리스트&시리즈 2019. 6. 12. 17:28
Contributed by HoHyeonKim
가끔 꼭 내 이야기 같은 노래가 들릴 때가 있다. 그런 노래를 들을 땐 시간이 사라진다. 대중음악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경험 중의 하나다. 이 경험을 유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가창자가 평생의 화두로 가져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보컬 학도들 사이에서 '노래 고수'로 불리는 김나영은 이번 달 9일 발매한 싱글 '솔직하게 말해서 나'에서 자신이 이 분야 전문가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김나영은 노래 잘하는 가수다. 약간의 비음을 제외하면 아주 특별하진 않은 보컬 톤을 지녔지만, 조음기관의 특별한 운용을 통해 전반적인 보컬을 색다르게 만드는 가수다. 특히 비음이 섞이는 가수들이 늘 보여주는 ㅁ,ㄴ,ㅇ 등의 울림소리 강조가 그의 노래엔 드러나지 않는 점이 흥미롭다. 그저 구강에서 혀를 툭툭 떨어뜨리며 '말할' 뿐이다. 노래 잘하는 가수가 톤을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운용되도록 놔둔다는 건 가사를 표현하는 진심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거나, 보컬적 자존감이 당당하리만큼 높단 뜻이다. 둘 중 어느 경우든 훌륭하다.
김나영의 이러한 태도가 '솔직하게 말해서 나'를 '나의 이야기'로 들리게끔 한다. 출근길, 퇴근길 등의 일상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걸려온 친한 친구의 전화를 받는 듯한 벌스부터 바운스감 있는 음정을 기술적인 진-가성 변환으로 표현하면서도 잃지 않는 집중력을 보여주는 코러스까지 모두 그의 진심 어린 태도의 범주 안에 있다.
이런 태도는 곡 후반부인 브릿지 이후에 극대화된다. 그의 이전 곡들에선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이다. 감정을 폭발하는 것과 폭발하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발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가창자의 의도가 명확하기에 감상자의 해석이 한 점으로 모이지만 후자는 그 감정에 터 잡아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에서 김나영은 후자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내었다. 그리고 김나영 정도의 두터움을 가진 보컬이 Eb5 이상의 음정에서 이러한 작업을 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론 가수 본인이 의도하고 있는 '발라드를 잘하는 가수'라는 이미지가 나중에 그의 발목을 질척거리게 할 진흙이 되진 않을지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이번 '솔직하게 말해서 나'를 비롯해 그가 발매한 곡들이 전부 한국 발라드의 전형적인 문법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노래 실력의 상승 정도였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계에서 디즈니 영화가 보여주었듯이 시의성과 신선함을 확보할 수 있다면 전형적이지만 실패하지 않는 문법도 가능할 수 있다. 대중음악에선 가사의 단어적 독특함을 확보한다든지, 참신한 스트링라인을 구성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가능하다. 물론 선택은 가창자 본인과 그의 음악을 만드는 팀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다. '전형적'이라는 것을 문제로 인식할지 말지 조차 그들의 선택이다.
김나영이 그리는 가요계의 밑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쉬어가는 싱글에도 진심을 다해 연주한 그의 태도가 감상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솔직하게 말해서 나'에서 보여준 출중한 실력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적어도 진솔하고, 깊이 있을 것이다. 김나영은 아직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행군 중이다. 이렇게 뚝심있게 걸어가는 보컬이 얼마 없는 만큼 앞으로 더 나은 음악을 보여줄 그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김나영 '솔직히 말해서 나'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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