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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쓸신잡] 논힙합 보컬의 인상적인 랩벌스 5선
    아티클/리스트&시리즈 2019. 2. 21. 13:16

    Written By 유하람 

     

    © 체스터 베닝턴 페이스북


    랩스킬은 힙합 안에서 완성됐다. 힙합이 아닌 래퍼는 종종 있었지만 그들조차도 힙합에서 만든 ‘잘하는 랩’의 기준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랩이 범용성이 뛰어난 기술이라고 한들 그 바탕엔 힙합 리듬이 있었고, 이에 충실하지 못한 랩은 설령 장르가 다르다해도 독창적이라기보다 미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타 장르 뮤지션의 랩은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곤 한다. 힙합이 아닌 바이브로 힙합 리듬을 완성도 높게 소화할 때 느껴지는 괴리감은 묘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보컬이 랩을 할 때 이 매력은 극대화된다. 래퍼에 비해 힙합 고유의 느낌에 덜 길들여져 특정 장르에 최적화된 바이브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유연하고도 탄탄한 발성 방식은 덤이다.

     

    그런 의미에서 ‘논힙합 보컬의 인상적인 랩벌스 5선’은 신선함에 목마른 리스너에게 좋은 자극을 주리라 기대된다. 차트성적, 장르와 무관하게 오로지 청각적인 요소만으로 뽑은 다섯 가수의 다섯 곡이다. 단,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마이크 시노다(좌)와 체스터 베닝턴(우) © 린킨 파크 페이스북

     

    1.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 - ‘Blackout’

    장르 : 얼터너티브 록

     

    린킨 파크(Linkin Park)에 보컬과 래퍼가 있다는 건 알아도 두 사람이 포지션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특히 체스터 베닝턴의 랩은 마이크 시노다(Mike Shinoda)의 보컬보다도 덜 알려져있다. 린킨 파크 팬을 자처하는 사람조차 ‘베닝턴이 랩을 한 적이 있어?’라고 되물을 정도다.

     

    2010년 공개된 정규 4집 <A Thousand Suns> 수록곡 ‘Blackout’은 그 의문을 시원하게 해결해준다. 곡 초반부 베닝턴은 날카로운 랩을 쏟아내는데, 청량감 넘치는 특유의 목소리가 깔끔한 전자음과 조화롭게 맞물린다. 후렴구로 넘어갈 때 하이톤 랩이 스크리밍으로 변하는 순간은 절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 린킨 파크 'Black Out' 라이브

     

    여담으로 베닝턴은 한참 뒤 램 오브 갓(Lamb Of God) 기타리스트 마크 모튼(Mark Morton)의 싱글 ‘Cross Off’에 보컬 겸 래퍼로 참여한다. 안타깝게도 베닝턴 사후에 공개돼 본인이 음원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Cross Off’에서 그는 ‘Blackout’ 시절보다도 훨씬 완숙해진 랩스킬을 선보인다. 만일 베닝턴이 조금만 더 많은 랩벌스를 남겼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 랙앤본 맨 페이스북

     

    2. 랙앤본 맨(Rag’n’Bone Man) - ‘Ego’

    장르 : 빈티지 소울

     

    사실 이 리스트에서 랙앤본 맨 선정은 조금 반칙이다. 이쪽은 랙앤본즈(Rag’n’Bones)라는 이름의 래퍼로 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커리어는 블루스/소울로 쌓았고, 곡에서도 보컬이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예외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랙앤본 맨은 차세대 거물만 선정된다는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Critics’ Choice Awards)'를 차지한 기대주다. 아직 1집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는 무려 두아 리파(Dua Lipa)를 제치고 수상한다. 소위 ‘덩칫값 하는’ 묵직한 보이스, 그와 상반되는 섬세한 표현력은 단숨에 그를 영국을 대표하는 신인으로 만들었다.


    - 랙앤본 맨 'Ego' 오디오 


    1집 <Human> 수록곡 ‘Ego’는 랙앤본 맨이 음악적으로 얼마나 영리한지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앨범 전반에 깔린 경건한 분위기를 이어받지만 그는 꼭 웅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미니멀하고 빈티지한 곡 위에서 랙앤본 맨은 체구와 상반되는 날렵함을 선보인다. 후반부 브릿지 형태로 들어간 랩벌스는 비트에 착 붙어 물흐르듯 흘러간다. 스킬풀하게 전개되면서도 빈티지 소울 바이브를 깨지 않는 절묘한 줄타기는 그가 래퍼인 동시에 뛰어난 보컬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기타를 잡은 누키 © 더 슬롯 페이스북

     

    3. 다리아 스타브로비치(Daria Stavrovich, Дария Ставрович) - ‘Swing(Качели)’

    장르 : 얼터너티브 록

     

    한국에서 비영어권 음악을 찾아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언어를 이해하는 건 둘째치고 일단 쿼티 자판으로 검색하기가 난감한 탓이다. 그럼에도 영어권 노래 커버 등으로 진입장벽을 뚫고 들어온 밴드를 들어보면 생소한 감성을 높은 퀄리티로 구현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더 보이스 러시아 시즌 5에서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의 ‘Zombie’를 맹렬한 목소리로 소화해낸 다리아 스타브로비치도 그 중 하나다.

     

    누키(Nookie, Нуки)라고도 불리는 스타브로비치는 중성적으로 느껴질만큼 파워풀하고 허스키한 목소리와 뮤지컬 가수 출신운 탄탄한 발성으로 유명하다. 팀으로는 더 슬롯(The Slot, слот)이라는 뉴메탈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힙합 리듬을 구현하는데도 꽤 능숙한 모습을 보인다. 밴드의 정규 6집 <Sixth(Шестой)> 수록곡 ‘Swing(Качели)’에서는 아예 랩으로 곡을 꽉 채운다.


    - 더 슬롯 'Swing(Качели)' 팬메이드 뮤직비디오


    ‘Swing(Качели)’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스타브로비치의 세련된 독특한 발성과 박자감이다. 록 기반 래퍼들은 지나치게 직선적인 발성 탓에 박자가 단순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스타브로비치는 자기 감성이 분명한 목소리로 밀도 높게 음절을 배치해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시킨다. 본업이 록 보컬이다보니 라이브에서는 다소 뻣뻣해지는 경향을 숨길 수 없지만, 적어도 음원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어 이 정도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비단 록랩을 떠나서 ‘여자 래퍼는 천편일률적이다’라는 편견을 깨주기에도 알맞는 좋은 벌스라 생각된다.


    © 자비아 워드 페이스북

     

    4. 자비아 워드(Zhavia Ward) - ‘100 Ways’

    장르 : 팝 알앤비

     

    TV 출연 이전부터 음악적 기반이 탄탄했던 스타브로비치와 다르게 자비아 워드는 완전히 오디션 하나로 뜬 케이스다. 하지만 ‘오디션 스타’하면 따라붙는 ‘양산형’ 꼬리표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꾀꼬리 같은 팝 알앤비 보이스로 힙합 리듬을 완벽히 소화하는 캐릭터는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고, 그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17살 자비아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소위 말하는 싱랩(Sing-Rap)이 대세가 됐다한들 대개는 ‘멜로디 붙인 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정말 톤 좋고 노래 잘 부르는 보컬은 굳이 랩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곤 한다. 해도 오히려 랩 본연의 형태에 충실하는 편이었다. 자비아는 달랐다. 팝보컬과 랩의 정확한 중간지점을 찾아 일찌감치 자기 기술로 만들어버렸다.


    - 자비아 워드 '100 Ways' 뮤직비디오 


    데뷔 싱글 ‘Candlelight’에서는 일반적인 팝 알앤비를 선보인 자비아는 두 번째 싱글 ‘Deep Down’에서는 예상 외로 정석에 가까운 힙합을 들고 나온다. 대망의 세 번째 싱글 ‘100 Ways’에 들어서는 프로덕션에서나 발성에서나 그 절충지대를 찾아낸다. 뉴메탈 래퍼 절대다수가 콘(Korn)과 림프 비즈킷(Limp Bizkit)에 빚을 지고 있듯, 만약 ‘팝랩’이라는 기술이 완벽히 자리잡는다면 자비아는 최소한 지분 8할은 가져가리라 예상한다.

     

    © 코리 테일러 페이스북


    5. 코리 테일러(Corey Taylor) - ‘Spit It Out’

    장르 : 뉴메탈

     

    앞서 콘과 림프 비즈킷을 얘기했지만 모든 뉴메탈 래퍼가 두 밴드의 자식은 아니다. 슬립낫(Slipknot) 프론트맨 코리 테일러(Corey Taylor)의 랩은 대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짚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분명히 완성도 높은 리듬을 구사하지만 힙합이라기엔 굉장히 이질적이며, 그렇다고 그냥 뉴메탈 랩으로 치부하기엔 비슷한 래퍼가 없다. 그렇기에 테일러의 랩은 상당한 희소성을 가진다. (여담으로 테일러는 언더그라운드 래퍼 테크나인(Tech N9ne)의 'Wither'라는 곡에 참여하고, 최근엔 키드 부키(Kid Bookie)라는 신예 래퍼와 콜라보를 예고하는 등 힙합 뮤지션과 직접 교류도 있는 편이다)


    - 슬립낫 'Spit It Out' 뮤직비디오 


    아쉽게도 테일러의 랩벌스는 1999년 발매한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에 집중돼있다. 그나마도 감정 전개에 따라 휙휙 바뀌는 보컬과 스크리밍, 중얼거림 속에서 산발적으로 분포해 온전히 즐기기 어려운 편이다. 그중에서 ‘Spit It Out’은 ‘No Life’와 더불어 비교적 진득이 테일러의 랩을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매끈한 톤과 스크리밍 섞인 랩을 오가는 스위치가 감상포인트다.

     

    썸네일에서도 예측이 가능하겠지만 워낙 날 것의 느낌이 강하고 과격한 탓에 앞선 곡들에 비하면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마지막을 장식할 ‘매운 맛’으로는 적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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