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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byface가 아닌 After 7, 그들을 원하는 이유
    아티클/칼럼 2018. 12. 29. 18:53

    Written By 유하람 


    ⓒ 에프터 세븐 공식 페이스북



    에프터 세븐(After 7)은 현 세대에게까지 회자되는 그룹은 아니다. 상업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 성과를 냈지만, 색깔 자체가 당시 흔히 볼 수 있었던 R&B 스타 중 하나 정도였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특별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커리어 전체를 그들의 친척이자 프로듀서였던 베이비페이스(Babyface)에게 빚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처럼 과소평가를 넘어 잘 기억되지 않을 만큼 별 볼일 없는 그룹은 아니었다. 적어도 에프터 세븐은 베이비페이스 인기에 업혀간 ‘금수저 그룹’은 아니었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이들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베이비페이스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R&B씬과 팝 시장을 풍미했던 전설적인 아티스트다. 그는 당시 R&B씬의 주류를 이루던 뉴잭스윙을 앞세워 가수·작곡가·제작자로서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중 솔로 커리어는 알 켈리(R. Kelly) 같은 최정상 뮤지션에 비하면 다소 처지는 편이지만, 프로듀서로는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만 7번 차지하는 등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보이즈 투 맨(Boyz II Men)의 “End of the Road”, 마돈나(Madonna)의 “Take a Bow” 등이 그 예다.

     

    그가 수면 위로 떠오르던 1989년, 베이비페이스 사단은 그 여세를 몰아 그의 형제·사촌들로 이뤄진 R&B 트리오를 내놓는다. 이들이 바로 에프터 세븐이었다. 에프터 세븐은 한국에서는 듀스(DEUX)가 상당부분 차용해 유명한 뉴잭스윙 특유의 발랄하고 멜로디컬한 사운드를 정체성으로 내세웠고, 이는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족 마케팅’을 앞세운 에프터 세븐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은 플래티넘에 올랐고, 불과 4달 뒤 발매한 베이비 페이스 솔로 앨범 <Tender Lover>는 이에 탄력 받아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앨범 단위 흥행에 있어 에프터 세븐이 베이비 페이스보다 먼저 성공을 거뒀다는 부분이다. 보통 슈퍼스타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히트 칠 땐 본인이 한참 커리어를 쌓아둔 뒤에 그 인지도에 힘입어 흥행하는 경우가 많다. 린킨 파크(Linkin Park)가 자리 잡은 뒤 리더격인 래퍼 마이크 시노다(Mike Shinoda)가 만든 인기 힙합 그룹 포트 마이너(Fort Minor)가 그 예다. 하지만 에프터 세븐은 베이비 페이스 사단의 인기를 앞장서 견인하며, 베이비 페이스 솔로 앨범 흥행에도 영향을 끼쳤다.


    뉴잭스윙 전성기를 견인한 베이비페이스 ⓒ 베이비페이스 페이스북



    에프터 세븐이 이 같은 저력을 발휘할 수 있던 근원은 바로 하모니였다. 앞서 언급한 베이비 페이스와 알 켈리의 간극을 돌아보자. 베이비 페이스는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보컬 역량이 그를 따라주지 못해 켈리 같은 최정상급 가수가 되는 데는 실패했다. 이는 그가 프로듀싱한 에프터 세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심하면 심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에프터 세븐 멤버들은 모난 구석은 없지만, 그렇다고 소름 끼칠 만큼 강력한 장점도 찾기 어려운 보컬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혈연으로 묶인 유대를 자랑하듯 적재적소에서 서로를 받쳐주며 기량을 100% 이상 끄집어냈다.

     

    90년대 후반 유행 변화와 더불어 베이비페이스가 감각을 잃으면서 베이비페이스 사단은 전체가 침체기에 빠진다. 에프터 세븐도 예외는 아니어서, 97년 해체 뒤 멤버들은 긴 잠적기를 가진다. 2006년 재결성하긴 하지만 별다른 활동은 없었는데, 2014~15년 경 베이비페이스가 부활을 알리면서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래지 않아 2016년, 에프터세븐은 정규 4집 <Timeless>로 무려 11년 만에 앨범을 발표한다. 물론 프로듀싱은 베이비페이스였다.


    애프터세븐 정규 4집



    <Timeless>에서 베이비페이스는 과거 같은 들뜬 사운드가 아닌 펑크(Funk)와 재즈가 적절히 혼합된 잔잔한 R&B를 선보인다. 프로듀서가 제 역할을 하는 가운데 두드러지는 건 에프터 세븐 세 보컬이 선보이는 녹슬지 않은 하모니다. 특별한 성장은 없었지만 에프터 세븐은 긴 공백을 무색케 할 정도로 완벽한 호흡으로 앨범을 꾸려나간다. 한 겹 한 겹 쌓이는 보컬은 강렬하진 않아도 곡을 흡입력 있게 끌고 가는 힘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하모니에서는 노련함이 느껴진다.

     

    특히 동반자와 같은 베이비페이스 앨범에도 실렸던 ‘I Want You’는 꽤나 인상적이다. 2016년 10월 시리우스 엑스엠(Sirius XM)에서 선보인 라이브를 본다면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공식 방송으로 남긴 사실상 마지막 라이브에서 에프터 세븐은 과장이나 꾸밈없이 노래 자체로 음악을 보여준다. 목소리 처리부터 제스처까지 그들은 소위 말하는 양산형, 즉 기계적으로 배운 작업을 반복하는 가수와는 거리가 다르다고 말하는 듯하다. “너를 원하기에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하는 사랑스러운 세레나데지만, 오히려 자신들이 사랑 받는 이유를 보여주는 무대였다고 하겠다.

     

    가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 ‘요즘 세대’는 그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에프터 세븐을 ‘위대한 가수’ 따위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베이비페이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룹 정도로 평가하곤 한다. 하지만 현역 때도 그랬고, 복귀작에서도 그랬듯 그들은 묵묵히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설령 베이비페이스 사단에 딸린 자매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가. 에프터 세븐이 인기몰이를 한 데는 그들이 만들어낸 시너지가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여전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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