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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 그리고 뉴메탈
    아티클/칼럼 2018. 12. 29. 19:10

    Written By 유하람


    ‘원조 뉴메탈 밴드’ 콘의 보컬 조나단 데이비스 ⓒ 콘 공식 페이스북



    ‘예술이냐 상품이냐’는 문화산업에서 영원한 난제다. 표현방법의 주안점이 독창성과 깊이냐 접근성이냐에 따라 작품과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는 크게 갈린다. 음악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도 ‘예술음악 대 대중음악’부터 팝시장 상업주의 논란에 이르기까지 형태만 다를 뿐 같은 소재로 여러 차례 홍역을 치렀다.

     

    문제는 음악이라는 콘텐츠가 이런 이분법에 모세 앞 홍해마냥 깔끔하게 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술음악도 관객이 있어야 존재가치를 얻으며, 대중음악도 복제품을 찍어내다 보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에 이석렬 클래식 평론가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음악언어를 예술적으로 발화시킬 때 예찬 받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 후대에도 칭송 받는 거장은 주로 인기와 예술성을 동시에 잡은 사람이다. ‘예술음악’이라는 클래식에서 이해하기 쉬운 음악세계로 인기를 끌었던 쇼팽부터, 넘버원 팝스타지만 실력도 완벽했던 마이클 잭슨까지 그랬다. 비단 아티스트 뿐 아니라 장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았던, 그래서 거대한 파급효과를 일으켰던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뉴메탈이다.

     

    – “뉴‘메탈’이지만 메탈은 아닙니다”

     

    힙합은 슬럼가 흑인을 중심으로 발달한 화음 없는 음악이다. 반면 메탈은 백인이 주도권을 잡은 주력을 중시하는 록 분파다. 간단한 프로필에서부터 보이듯 둘은 정말 접점을 찾기 어려운 사이다. 굳이 따지자면 메탈도 뿌리는 흑인음악에 두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50년대 로큰롤까지 거슬러 올라갔을 때의 얘기다. 90년대 초반 힙합과 얼터너티브 메탈이 동시에 유행한 배경 역시 같은 흐름을 탔다기보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발전하다 전성기가 겹친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민한 몇몇은 발상을 전환한다. ‘대중이 지금 열광하는 장르들이라면 서로 연관성이 없어도 섞어볼만 하지 않을까?’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얼터너티브 메탈 사운드와 힙합 리듬을 결합하고 그 위에 자기 취향에 맞는 소스를 얹었다. 그 결과 끝도 없이 다양한 조합이 탄생하는데, 이 모든 크로스오버를 통틀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메탈(Name Unknown Metal), 즉 뉴메탈(NU Metal)이라 불렀다.

     

    최초의 뉴메탈 밴드 중 하나로 꼽히는 RATM ⓒ RATM 공식 페이스북



    이 작명에는 ‘어떤 하위장르로 규정해 이름 지을 수도 없는 변종’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뉴메탈은 얼터너티브 메탈 때부터 희석된 헤비메탈 작법을 거의 해체해버렸다. 대신 아티스트의 창의력을 십분 발휘할 여지가 생겼고, 그 자리엔 힙합에서 빌려온 샘플링과 디제잉 등 타 장르 작법이 들어섰다. 골수 메탈 마니아라면 “메탈을 망치고 있다”며 입에 거품을 물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유연성은 뉴메탈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근간이 됐다.

     

    – 팝시장에 광풍을 일으키다

     

    콘(Korn)이 1994년 이 장르 최초의 작품이자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으로 메가히트를 기록한 이후 뉴메탈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단연 드라마틱한 분화였다. 다른 장르 같으면 몇 세대에 걸쳐 일어날 하위장르 파생이 뉴메탈에서는 굵직한 신인밴드가 한 번 나올 때마다 일어났다.

     

    레게를 접목한 히스패닉 크리스천 랩메탈 밴드 P.O.D., 힙합 사운드에 밀착해 백인 랩메탈의 정석을 제시한 림프 비즈킷(Limp Bizkit), 극도로 과격한 하드코어류에 힘을 실은 슬립낫(Slipknot), 축축하고 에스닉한 고향음악을 내세운 아르메니아계 밴드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 훵크 바이브 가득한 인큐버스(Incubus) 등 도저히 같은 장르라 생각하기 어려운 밴드들이 불과 5~6년 사이에 우르르 쏟아졌다.


    뉴메탈 최후의 대형 밴드 린킨 파크 공연 실황 ⓒ 린킨 파크 공식 페이스북



    태생이 혼종인 만큼 뉴메탈은 장르수용능력이 뛰어났고, 이는 짧은 시간 안에 넓고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는 기반이 됐다. 덕분에 뉴메탈은 앨범시장에서도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다. 잘 나가는 뉴메탈 밴드라면 플래티넘 기록은 웬만큼 갖고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2001년 등장한 린킨 파크(Linkin Park)는 첫 정규만 3천만 장을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한다. 후발 주자인데다 과격함의 극치를 달리는 머드베인(Mudvayne)도 골드만 세 번을 기록했다.

     

    – 화끈한 불길, 너무 이른 연소

     

    그러나 장르가 정착하기도 전에 너무나도 커져버린 탓일까. 미친 듯이 영역을 넓혀나가던 뉴메탈은 성장세만큼이나 급하게 제동이 걸렸다. 방송국과 메이저 레이블은 전성기를 누리는 뉴메탈 이용하고 싶어 했지만 그 창의력까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때문에 신인에겐 성공한 선배 밴드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길 요구했고, 그 결과 수많은 양산형 밴드가 범람하게 된다. 개성 넘치는 실험성으로 인기를 끌었던 뉴메탈이 10년도 지나지 않아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배들조차 뉴메탈을 지켜주지 못하거나, 지켜주지 않았다. 장르의 원형을 제시했던 콘과 림프 비즈킷은 과도한 음악색 변화와 최악으로 치닫는 앨범 퀄리티로 팬덤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은 내부 갈등으로 사실상 해체했고, 디스터브드(Disturbed)·파파로치(Papa Roach) 등 대다수 원로 밴드는 메탈코어·얼터너티브 록 등 대세에 편승해 떠났다. 심지어 데프톤즈(Deftonse)·슬립낫 같은 경우 “뉴메탈은 상업주의에 찌든 쓰레기 음악”이라는 목소리에 동참하기까지 했다.

     

    음악노선 변경에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며 6연속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노리는 디스터브드 ⓒ 디스터브드 공식 페이스북



    덕분에 대중음악에 묵직한 충격을 안겼던 뉴메탈이란 패러다임은 탄생한지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아 수명이 끊겨버린다. 이때 장르 발달 과정에서 탄생한 숱한 크로스오버는 하위장르로 뿌리내리기도 전에 송두리째 싹이 뽑혀나간다. 뉴메탈이 처음 등장했을 때 보여줬던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참 허무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나, 그렇지만, 그래도 뉴메탈

     

    물론 뉴메탈을 위한 변명은 가능하다. 메탈, 나아가 묵직함을 추구하는 ‘헤비니스’의 몰락은 원래 진행되고 있었다. 골수 헤비메탈 팬은 혐오하는 뉴메탈이 메탈 하위 장르 중 마지막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심지어 헤비니스의 수명 자체를 연장시켰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후 메탈코어가 대두되긴 했지만 뉴메탈 전성기에 비하면 한 없이 초라하다.

     

    팝 음악으로 보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하다. 비록 더 많은 하위장르를 뻗어나갈 ‘뿌리’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많은 파급효과를 끼쳤다. 밴드가 래퍼를 적극적으로 기용한다든가, 반대로 래퍼가 일렉기타나 세션을 적극 활용한다든가하는 현상은 뉴메탈 영향이 크다. 이메진 드래곤스(Imagine Dragons)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협업이나, 일렉기타를 앞세워 키드락식 랩을 선보였던 에미넴(Eminem)의 싱글 ‘Bezerk’가 좋은 예다.


    언더그라운드 시절 키드락의 동료였던 에미넴 ⓒ 에미넴 공식 페이스북



    무엇보다 뉴메탈은 장르를 넘어 대중음악세계에서 벌어진 최대의 실험이었다.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방식이 창의력과 예술성까지 갖췄을 때, 얼마나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지 보여줬다 하겠다. 뉴메탈이라는 장르 자체가 부활하는 날은 요원할지라도 무의미한 유행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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