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김호현의 보컬살롱] 장혜진과 윤민수, 너무나 전형적인 화려함
    아티클/리스트&시리즈 2019. 6. 27. 06:16

    Contributed by HoHyeonKim

     

    '술이 문제야' 아트워크

    올해는 발라드 시즌이 일찍 찾아왔다. 쌀쌀한 날씨에 어울렸던 노래들이 올해는 여름 한복판을 울린다. 어쩌면 시즌이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흐려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한여름의 장혜진, 한여름의 윤민수는 조금 새롭다. 기대 될 수밖에 없는 조합에 시기도 남다르니까. 하지만 '술이 문제야'는 이름 있는 두 가수의 깜짝선물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앨범 소개에도 나와 있듯 '술이 문제야'는 십삼 년 전 발매된 '그 남자 그 여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곡이다. 팬서비스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당위성이다. 추억은 완결된 기억이다. 그것이 기쁨이든, 아쉬움이든, 슬픔이든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인정되었기에 추억은 완결된 것이다. 이 때문에 추억이 된 작품과 연속성이 있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려는 사람은 추억의 완결성을 웃도는 짜임새나 새로운 창작이 있어야만 하는 당위성으로 감상자를 설득해야 한다. <술이 문제야>에서 이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화룡점정이 부족했다. 결국 보컬의 화려함만 돋보이는 아쉬운 작품이 되고 말았다.

    보컬은 확실히 화려하다. 듀엣 연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그루브의 궁합도 이 정도면 찰떡같다. 워낙에 오랜 기간 걸출한 실력을 보여주었던 뮤지션들이니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보컬 개개인의 측면에서 보면 특히 장혜진의 스타일 변화가 놀랍다. 이번 노래에서 장혜진은 깊은 호흡 위에 얹은 담백한 감정을 꿋꿋하게 뱉어내던 평소 스타일에서 벗어나 여러 톤을 속도감 있게 유기적으로 배치한다. 가창자 본인의 곡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 이해를 바탕으로 표현들을 효율적으로 안배한 계산의 힘이다.

    윤민수의 솔로 파트는 논하기 조금 복잡하다. 늘 그랬듯 윤민수는 <술이 문제야>에서도 감정의 활화산을 달린다. 그의 장점인 감정의 폭발력과 매서운 집중력으로 곡을 힘있게 끌고 나간다. 기술적으론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러나 필자는 얼핏 스쳤던 생각, 윤민수라는 보컬이 십 년 동안 매번 감정이 폭발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필자의 감동을 헝클어뜨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바이브에 대한 오랜 의리로 다시 감동을 붙잡았지만, 감상자가 감동 이전에 의리를 떠올렸다는 사실에 이질감이 들어서 두어 소절을 놓쳐버렸다. 결국 자포자기하며 인정하기 싫었던 묵은 생각하나를 꺼내 놓을 수밖에 없었다. 맞다. 과하다. 요즘의 윤민수는 너무 자주 감정을 폭발시킨다.

    물론 사골곰탕이 전문인 식당은 사골곰탕만 맛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 집이 원래 다른 국밥들도 정말 맛있게 잘하는 집이었다는 점이 단골을 아쉽게 하는 것이다. 장혜진과 바이브의 만남이라는 식당에서 다른 메뉴는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좋아했던 이별의 메타포만 조금 과할 정도로 걸쭉한 막걸리로 변해 메뉴로 남았다. 한 모금 마셔보니 걸출한 보컬과 관록 있는 프로듀서의 작업치고는 초라할 정도로 전형적인 맛이다. 이것이 필자가 <술이 문제야>를 듣고 <그 남자 그 여자>를 그리워했던 이유다.

    십삼 년 전의 그 감동을 재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는다. 진심을 다한 연주였다. 그러니 차트의 상위권에서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다. 거짓말은 그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렇게 아쉬운 소리를 잔뜩 해대는 것은 필자에겐 용돈 모아 바이브 <Re-Feel> 앨범을 구매했던, 그리고 앨범에 수록된 '그 남자 그 여자'를 들으며 느꼈던 감정이 무척 소중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혹시 그때 느꼈던 신선함이 무려 십삼 년 전의 감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일까. 우스운 소리지만, 이렇게 아쉬울 때만 술 생각이 나는 걸 보니 확실히 술이 문제긴 하다.

     

    - 장혜진 X 윤민수 '술이 문제야' 오디오

     

    김호현의 보컬살롱 시리즈

    2019/06/12 - [아티클/리스트&시리즈] - [김호현의 보컬살롱] 김나영, '내 이야기'를 만들다

    2019/06/21 - [아티클/리스트&시리즈] - [김호현의 보컬살롱] Billie Eilish는 어떻게 '안티팝'으로 승리했는가

    댓글

Copyright ⓒ 2018 By Hayarobi.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