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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현의 보컬살롱] 폴킴이 선물하는 비어있는 공간아티클/리스트&시리즈 2019. 7. 15. 16:48
Contributed By HoHyeonKim
노래를 잘하기 위해 씨름해 본 사람이라면 소박하고 깨끗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것이다. 특히 발라드 장르의 음악을 주로 부르는 가수들에게는 여유 있는 감성 표현이 일종의 경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폴킴(김태형, Paul Kim)은 이를 해내는 보컬이다.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하게 감상자의 귀를 사로잡아야 하는 현대 대중음악의 특성상 담백하게 노래하는 발라드 가수의 수는 점점 줄고 있다. 폴킴의 노래는 그래서 그런지 우리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폴킴은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3>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 후 꾸준히 작업물을 선보이다 <모든 날, 모든 순간>, <너를 만나>, <초록빛> 등의 곡이 크게 사랑받으며 지금은 확실한 팬덤이 구축된 가수로 자리 잡았다. 보컬에 대해 논할 때, 많은 사람이 천재성의 가치만 입에 담는다. 그러나 성실성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어도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가는 건 충분히 대단하고 어려운 일이다. 묵묵히 꾸준하게 자신의 음악을 내보였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폴킴의 성실성이 그의 약진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폴킴의 음악은 10년 전 즈음 유행한 영미권의 낭만적인 음악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특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끈적한 흑인 음악을 대중들이 친숙해 할 수 있도록 완전히 쉽고 가볍게 바꾼 모습이 돋보인다. 마이클 부블레(Michale Buble)나 웨스트라이프(Westlife)의 스타일이 문득문득 들리기도 한다. 장르화해서 이름을 붙이자면 <한국식의 담백한 R&B 발라드> 정도면 되려나. 모험을 하지 않아 색다를 것은 없는 스타일이다. 진심을 차곡차곡 천천히 담아 들려준다는 점에서 무게가 있는 것이다.
보컬 테크닉은 깨끗하고 단정하다. 한 소절 한 소절 소중하게 감정을 담아낸다. 불필요한 감정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제련하는 속도가 시원할 정도로 빠릿하진 않으나, 소절 간에 시간적 여유를 두어 감정을 충분히 정리하고 넘어간다. 꼼꼼함으로 느린 속도를 극복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듣기 수월하고 여유가 있다. 발음은 꽤나 영어식이다. 이는 2010년대 이후에 활동하는 보컬들에게서 자주 쓰이는 발음인데 영어 발음 특유의 그루브를 한국어로 표현하기 위해 약간의 변조를 주는 것이다. 평소의 언어습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발음이 폴킴의 개성을 형성할 만큼 유독 돋보인다. 나긋나긋한 믹스보이스로 운용하는 부드러운 톤은 덤이다.
짜고 매운 자극적인 맛에 지칠 때면 슴슴한 집밥이 그리워지곤 한다. 슴슴한 간이여야만 비집고 올라올 힘이 생기는 재료 본연의 맛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폴킴의 노래엔 가창자의 순전한 마음이 자리를 잡을 만한 빈 공간이 있다. 감상자는 그 빈 공간에서 안락함을 느끼며 어눌한 듯 툭툭 내뱉어지는 가사를 듣는다. 노래의 가사가 감상자의 이야기로 동화되는 과정은 이러한 빈 공간의 차분함 속에서 더 잘 이루어진다. 짜지 않은 된장국에서 된장의 맛이 더 잘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악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폴킴의 음악은 수개월째 차트를 지키고 있다. 어쩌면 다른 음악이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가 피로한 사람이 한국에 너무 많은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둘 중 어느 경우든 힐링이 필요하다. 소박하고 깨끗한 폴킴의 음악으로 쉬는 것, 담백하다.- 폴킴 '헤어질 걸 알아' 오피셜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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