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현의 보컬살롱] 비욘세, 자신에게도 비욘세인 이유아티클/리스트&시리즈 2019. 7. 27. 15:15
Contiributed By HoHyeonKim
비욘세 'Spirit' 아트워크 비욘세(Beyoncé). 그는 이름을 그대로 거론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설명을 찾기 힘들 정도로 굉장한 뮤지션이다. 그가 2019년 영화계 최고의 기대작 <라이온 킹>의 OST인 <Spirit>을 공개했다. 비욘세와 <라이온 킹>이라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만남이다. 비욘세에 관해 쓰고 싶은 내용은 정말 많지만, 팝 역사상 가장 성공한 디바의 커리어 전반을 짧은 지면에 훑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필자는 이에 아쉬움을 느끼며 그의 신곡 <Spirit>으로 초점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Spirit>에서 보여지는 비욘세의 보컬은 언제나 그랬듯 탁월하다. 힘이 넘치는 벨팅은 감상자로 하여금 80년대 후반의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떠오르게 한다. 게다가 강렬하지만 모나지 않게 잘 제련돼있다. 비욘세는 <Spirit>에서 벨팅으로 뚝심 있게 곡을 끌고 나가며 그 위에 특유의 그로울링과 바리에이션을 얹어 수려하게 보컬을 장식한다. 사자가 부르는 노래에 그로울링이라니, 이보다 궁합이 잘 맞는 기술을 찾을 수 있을까. 매번 들어왔던 패턴의 보컬이지만 탁월함으로 진부함을 지워버리니 지루하다는 평가를 도저히 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노래 정말 지겹도록 잘한다.
1994년 원작 애니메이션 OST의 프로듀싱 팀은 자연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프리카 토속 언어를 성실하게 사용하고 흑인의 영적 감수성을 건드리는 블랙가스펠식의 편곡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가공되지 않은 아프리카의 느낌을 성공적으로 연출했다. <Spirit>은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없었던 곡이다.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편곡의 측면에서 신선한 시도를 할 법도 했지만, 장르나 편곡의 패턴을 특별히 새롭게 가져가지 않으며 안전하게 원작의 기조를 이어나간다. 원작의 OST가 보여주었던 아프리칸 그루브, 즉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흑인 음악보다 더욱 과거에 표현되었던 음악적 유산의 가치를 인정하고 재현한 것이다. 감탄에 머물지 않고 짚어내야 할 부분이다.
<Spirit>의 편곡이 인상 깊게 느껴지는 건 과거를 향해 회귀했다는 사실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창자의 과거나 삶의 경험을 넘어 민족적 뿌리까지 닿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소셜테이너(Socialtainer)로 불릴 만큼 밀도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음악에 담아내는 비욘세이기에, 그의 음악에서 풍기는 민족적 향기가 단지 디즈니의 입금 때문에 풍기는 향기라고만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주장일 것이다. 오해를 피하고자 선을 긋자면 영화 OST에서 정치적 선포 따위를 읽어내는 것도 분명한 비약이다. 우리는 그 중간 어디쯤 터 잡은 다음, 전 세계를 향해 당당하게 연주되는 아프리카의 그루브를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비욘세도 딱 여기까지 바랬을 것이다. 역사를 보면 이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니 말이다.
멜팅팟인 미국의 대중음악계에서는 이렇게 소수민족의 색채가 강한 음악의 약진을 종종 볼 수 있다. 사회학적인 분석 틀을 사용해 소수 민족의 사회참여가 늘어났다느니, 구매력의 확보가 가능해졌다느니, 문화 예술의 전파속도가 빨라졌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감상자와 창작자가 함께 음악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창발 되는 서로를 향한 필연적 갈망을 설명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체성의 확립을 통해 설명해야 하는 자존감의 문제, 실존의 문제다. 비욘세는 <Spirit>을 통해 영화 내 캐릭터인 라피키의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답한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왔고, 그게 자랑스럽다고.
비욘세의 음악은 대중음악이 공동체를 감싸는 내러티브의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공동체의 내러티브는 공동체의 역사다. 비욘세는 낯간지러울 수 있는 역사라는 단어를 조명해 본인의 수려한 기술로 거부감 없이 쉽게 그의 정체성을 풀어냈다. 우리는 어떠한가. 그 옛날 누군가의 말처럼, "코레아 우라"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가.- 비욘세 'Spirit' 뮤직비디오
김호현의 보컬살롱 시리즈
2019/06/12 - [아티클/리스트&시리즈] - [김호현의 보컬살롱] 김나영, '내 이야기'를 만들다
2019/06/21 - [아티클/리스트&시리즈] - [김호현의 보컬살롱] Billie Eilish는 어떻게 '안티팝'으로 승리했는가
2019/06/27 - [아티클/리스트&시리즈] - [김호현의 보컬살롱] 장혜진과 윤민수, 너무나 전형적인 화려함
2019/07/04 - [아티클/리스트&시리즈] - [김호현의 보컬살롱] 나오미 스콧과 디즈니, 진부함을 극복하는 방법
2019/07/15 - [아티클/리스트&시리즈] - [김호현의 보컬살롱] 폴킴이 선물하는 비어있는 공간
2019/07/18 - [아티클/리스트&시리즈] - [김호현의 보컬살롱] 찰리 푸스, 비판을 감내하는 담대한 재능
'아티클 > 리스트&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호현의 보컬살롱] 홀로서기를 마친 재능, 백예린 (0) 2019.08.18 [김호현의 보컬살롱] 잊혀졌던 새로운 바람, 신바람 이박사 (3) 2019.08.16 [김호현의 보컬살롱] 찰리 푸스, 비판을 감내하는 담대한 재능 (0) 2019.07.18 [김호현의 보컬살롱] 폴킴이 선물하는 비어있는 공간 (3) 2019.07.15 [김호현의 보컬살롱] 나오미 스콧과 디즈니, 진부함을 극복하는 방법 (0) 2019.07.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