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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현의 보컬살롱] 홀로서기를 마친 재능, 백예린아티클/리스트&시리즈 2019. 8. 18. 15:45
Contributed By HoHyeonKim
백예린 <Frank> 아트워크 이렇게 어린 나이에 뮤지션들의 뮤지션이 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그의 노래는 깨끗하고 정갈하다. 기술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지만, 결코 뽐내지 않는다. 무심한 척 예쁜 가사를 툭툭 던지며 감상자를 유혹하고 인내력 있게 기다려 기어이 유혹에 성공한다. 언제나 한 단계 위에 있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이 이 유혹에 힘을 싣는다. 백예린, 부러움에 굴복하기 정말 싫지만 가수로 타고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백예린의 데뷔는 K팝스타 우승자 박지민과 함께였다. 15&는 팀 이름에서 드러나듯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는 두 소녀의 음악적 재능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은 팀이었다. JYP는 두 음악 영재의 만남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양보하는 것이 어색했던 소녀들은 물론 의도적이진 않았겠지만, 서로에게 맞지 않는 울타리를 씌워 버렸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가진 잠재력에 비해 다소 애매한 작업물을 반복적으로 내놓고 말았다. 보컬도 출중했고, 심지어 다양한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으나 대결 구도 비슷하게 돼버린 그들의 그림에서 풍기는 애매한 느낌이 능숙한 보컬과 다양한 시도를 가려버린 것이다.
이후 백예린은 약간의 공백 기간을 가지고 솔로 미니 1집 <FRANK>를 발매했다. 백예린은 이 앨범에서 한결 자유로워지고 솔직해진 음악을 선보였는데 그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심심한 듯 진중한 모습에서 음악적 발전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타이틀 '우주를 건너'에서 들리는 몽환적인 가사와 애써 감춘 그의 최소주의적인 보컬 테크닉은 십 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하고 세밀했다. 섬세하고 예민한, 그래서 특별한 백예린의 감성이 그의 시그니쳐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백예린 인스타그램 노래에서의 섬세함은 가창자의 귀가 결정한다. 우리는 섬세함을 논할 때 그것이 상대적이든, 절대적이든, 일종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가까울수록 섬세함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가령 정확한 음정에 가까울수록 음정 컨트롤이 섬세하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런데 가창자가 정확한 음정을 들을 귀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곡의 멜로디와 그루브, 사운드에서 표현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럴 경우, 섬세한 컨트롤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래를 섬세하게 부르기 위해선 음악을 이해하는 귀를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백예린은 이 기준을 세우는 작업을 정말로 예민하게 해낸다. 귀가 정말 좋다. 음악을 농밀하게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귀이다.
가냘파 보일 정도로 예민한 그의 감성과 다소 내향적인 성격을 고려하면, 그의 관심이 일본의 시티 팝 장르로 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찔하게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바쁜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에겐 쉴 곳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쉴 곳은 너무 안락하면 안 된다. 도시인이 내일의 바쁨과 단절된다는 것은 곧 사회에서의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도시인은 그저 가벼운 고독을 위로하는 배경음악 정도를 쉴 곳으로 충분하게 여긴다. 백예린의 감성은 이 무기력하고 자조적인 낭만주의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도시, 밤, 로맨티시즘, 약간의 우울. <Our love is great>에서 사용된 백예린 표 시티 팝의 재료이다.
요즈음 그의 음악은 통상적인 대중음악의 범주를 조금씩 넘어서고 있다. 이 진보가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략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무서울 정도의 솔직함 때문이다. 새벽에 쓴 일기장 같은 가사 앞에서 한 방이 있니, 없니, 대중성과 음악성의 균형이 어떠니, 하며 논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R&B 하는 이소라, 음, 아니 그냥 백예린. 그의 특별한 감성을 응원할 뿐이다.- 백예린 '우주를 건너' 뮤직비디오
김호현의 보컬살롱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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