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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현의 보컬살롱] 잊혀졌던 새로운 바람, 신바람 이박사아티클/리스트&시리즈 2019. 8. 16. 14:15
Contributed By HoHyeonKim
신바람 이박사. 그는 그저 트로트 가수라 설명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오묘한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에서 풍기는 전반적인 풍격은 테크노 같기도 하고, 트로트 같기도 하다. 보컬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로 복잡하다. 톡 쏘는 비음의 날카로움은 70년대 유행한 록 보컬의 톤과 닮았고, 리듬을 딱 맞게 끊어주며 박자를 쪼개는 능숙함은 보컬보단 원숙한 펑크(Funk) 베이스 연주자에게서 느껴지는 그것에 가깝다. 재미있는 뮤지션이다. 그러나 절대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절대로 우습진 않다.
그는 소위 '고속도로 뽕짝'이라 불리는 양산형 트로트 테이프로 그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워낙에 가수 본인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데다 듣자마자 흥이 나는 사운드였기 때문에 무려 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소니 뮤직 대표에게 발탁돼 일본에 진출했고, 이때 일본에서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 <Encyclopedia of Pon-Chak(뽕짝 대백과)>이 대성공을 거뒀다. 엔카에서 시작된 트로트로 본고장인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외국인이 김치 브랜드를 한국에서 런칭해 성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앨범의 대표곡이 한국에서도 유명한 'Young Man'과 'Monkey Magic'이다.
화려한 귀환이었다. 때마침 한국은 '엽기'라는 트렌드가 유행을 하고 있었고 ADSL의 보급으로 콘텐츠의 유통이 한결 간편해진 상황이었다. 이박사의 'Young Man'과 'Monkey Magic'은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많은 유행이 그렇듯 엽기의 유행이 지나가며 이박사의 인기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마케팅의 실패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대중의 오해였다. 당시의 대중들은 이박사의 음악을 다른 엽기 콘텐츠들 즉, 잠깐의 흥미를 선사하는 괴이한 콘텐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느끼는 대로 말하는 감상자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마는, 다른 엽기 콘텐츠들처럼 이박사의 음악도 단순하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한 오해다. 이박사의 음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박사의 음악에선 키치(Kitsch)적인 감성의 흔적이 보인다. 그가 '고속도로 뽕짝' 출신인 것을 그의 음악에서 문득문득 느껴지는 유치함의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유치함 때문에 다소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박사의 음악이 듣기에 가볍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진지하게 살펴 들으면 그가 사실 키치에서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고속도로 뽕짝'의 사운드를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사운드의 가벼움을 어색하게 감추려 급급해하지 않고 무시당했던 바로 그 신디사이저 소리를 무기로 이용해 사파의 고수처럼 편견과 선입견을 향해 정면돌파 한다. 그리고 아득히 멀어 보이는 신세계로 약진한다. 이 같은 시도는 'Space Fantasy'에서 극대화되는데, 이때의 이박사는 정말 전위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진보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키치를 드러내어 키치를 넘어선 것이다.
한 원로급 유명 트로트 가수가 "이박사는 정통이 아닌 광대일 뿐이다"라고 발언했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이 아니길 빈다. 이 말을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객관적으로 해로운 것으로 인식하는 수준의 '꼰대'거나, 음악적 진보를 읽어내지 못하는 수준의 비루한 역량을 가졌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필자의 아쉬움은 이 지점에서 극대화됐다. 이박사라는 뮤지션의 빛이 발하고, 지고, 재평가받는 모든 과정 가운데 트로트계의 시선은 언제나 싸늘했다. 오히려 전위 예술이나 레게 등 타 장르의 뮤지션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협업을 시도했다. 집안에서는 경시되고, 바깥의 뮤지션들만 그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이 필자를 무척이나 씁쓸하게 만든다. 그의 가치를 높이 사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게 그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다.
트로트는 구닥다리 음악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있을까. 최근 대학 축제 등에서 트로트 가수 김연자의 <Amor Fati>에 열광하며 춤을 추는 청년들을 보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이박사는 그 가능성을 무려 이십 년 전에 보여주었다. 그때는 우스운 뮤지션으로 평가받았지만 지금은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 육십 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록 페스티벌의 청년들을 능수능란하게 호령하는 그를 보면, 그를 무시했던 트로트계에 묻고 싶어진다. 아직도 후회하지 않는가?- 이박사 '몽키매직' 라이브
김호현의 보컬살롱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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