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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현의 보컬살롱] 찰리 푸스, 비판을 감내하는 담대한 재능아티클/리스트&시리즈 2019. 7. 18. 16:42
Contiributed By HoHyeonKim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지켜보는 맛이 있다. 찰리 푸스(Charlie Puth)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찰리 푸스를 지켜보는 게 흥미로운 이유는 그의 절대 음감, 수려한 학력, 어린 시절의 특별한 일화들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뮤지션은 음악으로 말한다"라는 격언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고집스럽게 음악으로 말한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힘입어 깜짝 등장한 가수가 이렇게 정도(正道)만을 고집한다는 점이 그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마이너한 유튜버 시절부터 뮤지션들 사이에서 재야의 강자로 알음알음 이름이 돌긴 했지만,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찰리 푸스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15년 배우 폴 워커의 추모곡 <See You Again>이 메가 히트를 기록한 이후다. 찰리 푸스는 이 곡에서 유연한 믹스보이스와 대중친화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줬다. 이후 작업물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준비된 모습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기대와 함께 찰리 푸스는 2016년 정규 1집 <Nine Track Mind>를 발매했다.
부담이 컸던 탓일까, 대중의 기대와는 달리 찰리 푸스의 정규 1집 <Nine Track Mind>엔 음악계에 그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주장할만한 음악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다지 신선하지 않은 기술의 나열이 전부였다. 비로소 찰리 푸스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말할 기회가 주어진 무대에서 찰리 푸스 대신에 샘 스미스(Sam Smith)와 위켄드(Weeknd)를 적당히 섞어놓은 개성 없는 테크니션이 맥없이 노래할 뿐이었다. 음악에서 묻어나오는 줏대 없는 혼란스러움에 터 잡아 추론하건데 찰리 푸스는 이전의 EP에서 드러난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아직 무디게 감을 잡은 대중성과 어설프게 섞으려 했고, 이 과정에서 갈팡질팡 혼란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앨범의 구성이 전체를 뚝심 있게 끌고 나가는 하나의 컨셉 없이, 데뷔 30년 차 원로 가수의 컴필레이션 앨범 같은 구성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찰리 푸스가 데뷔 30년 차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2년 뒤, 찰리 푸스는 기대가 우려로 변한 심정의 대중에게 정규 2집 <Voicenotes>를 공개했다. 흥미롭게도,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2년 전의 난잡함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더욱 재밌는 것은 1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찰리 푸스가 선택한 방법이다. 그는 개성이 희미하다는 지적에 답하기 위해 정체성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자신을 구성하는 뿌리를 탐구했다. 샘 스미스보단 보이즈 투 멘(Boyz ll Men)으로, 위켄드보단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으로 향했다. 올드 스쿨을 선택한 것이다. 유행을 따라가기에 급급해하지 않고 익숙함을 뿌리 삼아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겠다는 일종의 행진 선언이다. 이를 통해 찰리 푸스는 선배 뮤지션들의 어깨를 딛고 올라섰다는 것을 애써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본인이 21세기의 뮤지션이기 때문에 선배 뮤지션들과 본질적으로 구별될 수밖에 없었던 지점을 포착할 수 있었다. 찰리 푸스의 개성이 안착한 이 지점이 그의 커리어에 크게 유의미한 지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많은 사람이 올드 스쿨은 진부하다고들 쉽게 말한다. 그러나 이는 유행이 돌고 돈다는 자명한 사실을 잊고 하는 말이다. 유행이 반복되는 것은 주요 소비층의 나이와 관련이 있다. 대중음악의 주요 소비층인 십 대와 이십 대는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음악들을 신선하게 여긴다. 당연한 이치다.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이와는 대비되게 이들은 불과 수 년 전 유행했던 음악들은 진부하게 여긴다. 역시 당연한 이치다. 이미 들어봤고 질렸으니까. 찰리 푸스의 2집 <Voicenotes>는 오래될수록 신선해지는 올드 스쿨의 이런 오묘한 상황을 예술적으로 파고들었다. 패션에 비유하자면 뉴트로의 흐름에 올라 탄 것이다.
벌써부터 그에게 '블루 아이드 소울의 계승자' 같은 거창한 칭호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음악을 증명하려는 그의 의지가 승부욕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와닿는다는 점이 필자의 상상력을 긍정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사실이다. 찰리 푸스는 자신의 음악이 과거의 무엇으로 구성됐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에 성공했다. 과거로의 회귀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이제 정체를 드러낸 그의 줏대가 미래로 여행할 순서다. 미래에서 다시 보자, 찰리 푸스. 그때는 <See You Again>을 뛰어넘었길!- 찰리 푸스 'Attention'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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