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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그리고 인간에 관해서 - 미디안(Midian) 인터뷰아티클/인터뷰 2019. 6. 15. 10:35
아름다움이 꼭 '예쁠' 필요는 없다. 투박해도, 어두워도, 심지어는 때론 악해도 아름다울 수 있다. 매체는 보통 순수하고 발랄한 사람 기대하지만, 지금도 누군가는 조명이 닿지 않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자기 미학을 지켜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반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밴드, 국내보다도 해외에서 먼저 인정 받고 있는 밴드 미디안(Midian)을 하야로비가 만났다.
Q.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한다. 이름과 포지션이 어떻게 되는가.
유신(이하 유) : 미디안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유신이다.
김태호(이하 김) : 드러머 김태호다. 미디안에서는 가장 오래된 멤버다.
Q. 원년멤버로 알고 있는데 리더는 아닌가.
김 : 미디안은 리더가 정해져 있지 않다. 서로 역할을 분담하는 형태다.
Q. 미디안은 어떤 밴드인가.
김 : 멜로딕 데스메탈로 시작해 지금은 우리 스타일을 찾아나가고 있는 밴드다. 소속사에서는 ‘코리안 제너레이션 멜로딕 데스메탈’이라고 하던데(전원웃음). 잘 모르겠다.
Q. 무슨 뜻인가(웃음).
김 :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유 :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워서 그렇게 소개하는 것 같다.
Q. 이름이 왜 미디안인지도 알고 싶다. 익스트림 메탈 계열 전설 크래들 오브 필스(Cradle Of Filth)의 명반 <Midian>과도 관련이 있나.
김 : 전혀 없다. 우리가 아이덴티티로 삼는 양면성을 표현하기 위한 이름이다. 미디안은 모세가 사람을 데리고 갔던 약속의 땅인 반면 중세 시대 마녀사냥이 진행된 곳이기도 하다. 인간도 그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이 양면성을 표현하는데 굳이 미디안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성경 용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난 신학도를 하려고 했을 만큼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웃음).
유 : 우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람은 보통 선한 부분만 보여주고 살지만 사실 누구나 악한 면도 가지고 있다. 그 악을 이용하기도 하고, 선이라 믿었던 것이 선이 아니기도 하다. 이런 내용을 인간사를 바탕으로 풀어내는 가사가 주를 이룬다.
Q. 어떤 밴드에게 영향을 받았고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한데.
유 : 지향점은 서로 다 다르다. 컨셉이나 메이크업, 라이브 퍼포먼스에서는 어두우면서도 아름다운 느낌을 추구하는 내 입김이 컸다. 우리가 말하는 양면성을 직관적인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향 받은 밴드는 마릴린 맨슨(Marylin Manson), 람슈타인(Rammstein)을 꼽을 수 있다. 비쥬얼로 표현하는 노력을 많이 참고했다.
김 : 특정 밴드에게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유)신이 말대로 양면성이라는 소재를 우리 스타일로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컨셉과 주제 모두. 광폭하게 달리는 익스트림 밴드면서 서정적인 피아노 인스트루멘탈 비중이 큰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런 온도차를 잘 풀어내다보면 사람의 감정기복을 스토리 있게 앨범에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국내에서 보기 드문 멜데스 밴드다. 작업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김 : 곡부터 앨범까지 서사가 느껴지도록 노력한다. 앨범을 관통하는 큰 컨셉을 먼저 정하고 인스트루멘탈을 짜면 신이가 세부사항을 조정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곡이 복잡해지고 길어지는 경향이 좀 있다.
이번 정규 2집은 ‘치유’라는 카테고리를 설정해놓고 시작했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는 아니고 어두운 감성에 의한 치유다. 그래서 <Pure Darkness>다. 이것도 양면성이지. 여기서 신이가 곡을 하나하나 해석해 이야기를 붙였다.
유 : 1집 <Bring Me The Darkness>도 주제의식이 제목대로였다. 자살, 악행 등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어둠을 우리가 다 가져갈테니 너희는 밝게 살라는 테마였다. 덧붙여 사운드적으로는 심포닉 요소를 추구하고 있다.
Q. 양면성에 대한 내용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한 소재를 풀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유 : 평소에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실제로 마주치는 사람부터 매스컴까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인간관계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에 빙의해 생각해본다. 일종의 연기 같은 거다. 그렇게 여러 사람 입장을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입으로 말하다보면 자연스레 양면성이 담긴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Q. 아무래도 국내에서 익스트림 메탈이 약세다보니 함께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서로 어떻게 알고 뭉치게 됐나.
김 : 처음에는 내가 기타 겸 보컬이었던 친구 하나와 함께 시작했다. 이후 2009년쯤 신이가 들어오면서 셋이 됐다. 그때 신이는 전혀 익스트림 계열이 아니었고 그냥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내 입장에선 그래서 오히려 플러스 알파가 있었고.
유 : 원래 따로 하던 밴드에서는 트랜스픽션, 피아(Pia) 류 밴드 카피를 많이 했다. 메탈이랑은 큰 상관이 없었지. 그러다 태호 형이 직접 기획하는 공연에 서게 됐다. 그때부터 형과 알고 지냈다. 그러다 하루는 형이 하던 로컬 마인드(Local Mind)라는 익스트림 밴드 합주를 구경 하게 됐다. 안 그래도 강한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던 차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 로컬 마인드가 휴식기에 맞춰 내 밴드 멤버들이 줄줄이 입대하면서 시간이 났고, 태호 형과 같이 팀을 만들게 됐다.
김 : 처음부터 신이는 탈렌트가 돋보였다. 영입하면 다른 팀이 없는 무기를 많이 가질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 그리고 내 기대보다도 훨씬 활약하고 있다.
Q. 아까 리더가 없다고 했다. 창립자이면서 리더를 맡지 않은 이유가 있나.
김 : 리더의 존재 자체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정권을 한 사람이 쥐면 강압적인 분위기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미디안은 작업방식도 브레인스토밍에 기반을 둔다. 현악기, 타악기, 보컬 모두 각자 잘하는 영역에서 거리낌 없이 아이디어를 던지면서 작품을 만들어간다. 나만 해도 내가 만든 드럼라인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바뀌어서 놀라곤 한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게 미디안인 거고.
보통 기타리스트가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기타리스트는 대개 작곡을 주도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곡을 만드는 데 있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많다. 그런데 미디안은 서로 짜놓은 구성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니 여기에 거부감을 느끼더라. 자기 기여를 인정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 거지. 우리가 멤버 교체가 잦은 이유도 새로 들어온 사람마저 이 갑갑함을 못 버티고 나가기 때문이다.
유 : 사실 자칫하면 곡이 산으로 갈 수 있는 위험한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사람 중심이 되는 밴드는 하지 말자고 했다. 당장은 편하지만 결국 밴드가 그 사람 것이 되는 셈이니까. 모두가 융화된 밴드를 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여담으로 멤버를 구할 때는 비주얼도 약간은 보고 있다. 내 욕심이지만 실력은 당연히 기본이고 팬들에게 어필할 플러스 요인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메이크업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래서고.
Q. 영입이나 멤버 대한 큰 비화는 없는가.
유 : 베이시스트가 28살로 제일 어린데 영입을 한 번 거절한 적이 있다. 그런데 태호 형이 오히려 그 거절을 멋있다고 생각하고 높게 평가했다.
김 : 신이와 비슷한 시기에 제안했는데 그 친구가 거절했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우리는 설립 초기였지만 이미 익스트림 씬에서는 주목 받고 있었고, 그 친구 팀은 직장인 밴드에 가까웠다. 당시 나는 미디안이 그 친구에게 메리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거절당하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자기 뚝심이 있는 친구였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고 3년 쯤 뒤에 다시 제안해 밴드에 들였다.
유 : 아까 기타리스트들이 잘 못 버틴다는 말을 했는데, 사실상 유일하게 이 작업 방식에 맞춰 움직이던 사람이 김보현 초대 기타리스트였다. 팀에 녹아들어 곡을 정말 잘 만드셨다. 그러다 결혼하고 애기가 생기면서 나가게 되셨다. 그때부터 힘들었다. 그만큼 밴드에 맞춰주는 기타리스트가 없었으니까. 지금은 베이시스트가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고, 현 기타리스트 아사귀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Q. 많이 조심스러운 질문인데, 세상을 떠난 이민영 전 피아니스트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나.
김 : 그 친구도 결혼 때문에 팀을 나갔다. 사실 여자 멤버들은 대개 결혼해도 밴드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다. 보통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남편이 베트남에서 일을 해서 따라가느라 밴드를 나가게 됐다. 그런데 어느날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남편을 통해 알게 됐는데, 몸이 안 좋아서 귀국했더니 암이었고 결국 치료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 : 메탈 팀에서 키보드를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 그만한 실력자를 구하기는 더더욱 그렇고. 나간 다음에도 멤버들이 정말 아쉬워했다. 웃으며 헤어졌다보니 공연 때도 작업 때도 피아노를 자주 부탁했고, 그렇게 탈퇴 후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김 :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의견차로 나가도 좋게 나간 사람들은 지금도 소통하고 지낸다. 딱히 크게 싸우고 나간 사람은 없어서.
Q. 지난 4월 러시아의 다크 시티 매거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전에도 해외 매거진에서 미디안을 다루곤 했는데 해외에서 오히려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
김 : 데스메탈이라는 장르가 전혀 사람을 울리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사람의 피를 끓게하는 포인트가 있다. 그렇기에 장르가 유지되는 것 아니겠나. 여기에 듣기 좋은 멜로디까지 들어간 변종이 멜로딕 데스메탈이고. 대중성을 완전히 등진 음악은 아니라는 거지.
한국에서 우리 지지기반이 약한 이유도 그저 장르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다. 익스트림 메탈로 묶이면 대중 앞에 선보일 기회 자체를 받기가 어렵다. 우리는 멜데스라는 틀 안에서 최대한 대중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어쨌건 국내에서는 잘 안 알아주니까. 우리가 노선을 확 바꾸지 않는 이상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해외에서 우리가 음원을 보낸 적도 없는데 알아서 인터뷰를 제안하고 지면에 실어줬다. 다크 시티 매거진도 사실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 어떤 매체인지조차 몰랐다. 알고보니 한국으로 치면 옛날 핫 뮤직 같은 전통 있는 매거진이었고, 아시아 팀은 거의 다루지도 않는데 우리 인터뷰가 한 페이지 전체를 채웠더라.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기회가 오면 좋을텐데(웃음). 일본에서는 그래도 연락이 종종 오곤 한다.
Q. 해외에서 받는 주목이 실제 공연으로 이어지기도 하는가.
김 : 상황만 되면. 이번에도 대만에서의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여러 국가를 돌 생각이다. 왜 하필 대만이냐면 제일 먼저 연락이 와서(웃음). ‘와! 대만에서 공연을 하자!’고 한 적은 없다. 국내보다 익스트림 씬이 형성돼있고, 우리 음악에 반응이 빠르다보니 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쇼케이스한다고 공연장을 내주지는 않는다. 대만에서는 먼저 쇼케이스를 하라고 자리를 만들어주더라.
한국에서도 장르에 대한 편견이 없었으면 좋겠다. 현재 주류인 음악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국가나 시에서 운영하는 페스티벌에서라도 장르의 다양성을 수용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 보여줄 기회가 있고 없고는 아예 상황이 다르니까.
Q. 대만에서 공연을 하게 된 배경을 좀 더 풀어달라.
김 : 기제(Gyze)라는 일본 팀과의 인연이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기재가 일본에서 잘 안 될 때 우리가 한국에서 먼저 앨범을 낼 수 있도록 이끌어줬고, 그 이후 상황이 잘 풀리면서 오히려 기제측이 우리의 일본진출을 도와줬다. 서로 돕고 도우면서 끈끈한 우정이 생겼지.
그러다 기제가 새 앨범을 내면서 한국 일본 대만 3국 합작 공연을 열었다. 1,500명은 들어갈 수 있는 큰 공연이었고, 기제가 한국/대만 밴드를 데려온다는 소식에 현지씬에서도 꽤 이슈가 됐다. 그런데 현악 멤버들이 공항에서 잡혔다. 공연 비자가 없어서. 그 직전에 아이돌 누가 무비자로 공연하다 걸려서 악기 들고 가는 사람 수색이 엄격해졌는데 마침 그때 걸린 거지.
유 : 티켓도 거의 매진됐는데 우리만 공연을 못했다. 간 김에 한탄스럽게 공연 볼 준비나 하고 있었는데 기제 쪽에서 아쉬운대로 두 곡 정도 같이 하자고 제의를 했다. 한국 왔을 때 콜라보로 합주했던 곡이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내가 가사 외우느라 좀 바빴지(웃음).
김 : 공연 끝나고는 술마시면서 다 같이 친해졌다. 대만에서 온 안세리온이란 밴드와 그때 인연이 생겼다. 안세리온이 해체한 후에도 개개인과 소통하며 지냈고, 유기적으로 대만씬에도 이름을 알리게 됐다. 특히 기타리스트를 통해 인연이 많이 연결됐다. 이번 대만 쇼케이스는 안세리온 사람들이 직접 구해준 건 아니지만 그들 영향이 분명 있었다.
Q. 페이스북에 항상 영문 번역을 올리는 것도 이런 해외팬을 의식한 서비스인가.
김 : 없잖아 있다. 방문자가 한국인보다 해외 사람들이 많거든. 적극적으로 홍보하진 않아도 오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해야겠다 싶었다. 영어는 내가 되고 베이스가 3개국어가 가능하다. 기타도 일본에 살다와서. 한국, 일본, 영어는 전혀 문제가 없다. 번역문 올리는 게 어렵지 않은데 안 올릴 이유가 없었지.
Q. 커리어 상에서도 해외 밴드와의 연이 돋보인다. 독일 메탈 밴드 레이지(Rage) 내한 공연 당시 게스트로 참여했다. 당시의 경험을 돌아본다면.
김 : 몇 개 팀을 추천했는데 레이지가 직접 컨펌을 했다고 들었다.
유 : 난 몰랐다. 뭔가 인정 받은 것 같은 기분이라 그저 좋았다..
김 : 포스터도 다 컨택했다고 하더라.
Q. 해외 활동을 주로 이야기했지만 국내에서도 확실한 자기 영역을 만들고 있다. 팬카페 회원이 300명 가까이 되는 메탈 밴드는 처음 본 것 같다. 팬들과 직접 소통하기도 하는가.
유 : 어떻게 그걸 봤지? (전원웃음) 페북이 없고 다음 카페가 되게 흥하던 시절이라 그때 확실히 많이 끌어모으긴 했다.
김 : 지인도 많다보니 되게 열심히 했는데 거의 안 움직이고 있다. 페북이 곧 팔로워가 4천명이라 이제 이쪽으로 뭐라도 해보려고 한다.
유 : 아직까진 콘텐츠가 따로 없고 한국 팬이 많지 않다본 당장은 계획이 없지만.
김 : 그래도 필요성은 확실히 느끼고 있다. 노머씨 페스트를 보면서도 많이 느끼고 있다. 아, 음악이 다가 아니구나.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우리 팬을 관리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있다.
Q. 언급한 노머씨 페스트와는 전신 격인 블랙버드 연합 공연 때부터 함께했다. 주최측인 해머링(Hammering)과 원래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
유 : 거의 같이 걸어온 형제 밴드다.
김 : 두 밴드를 각자 만들 때부터 잘 알았다. 그땐 20명 들어오면 다 차는 신촌 레드 클럽에서 공연을 같이 자주 했다. 보컬 (김)기찬이랑 드럼 (김)용훈이가 나랑 동갑내기 친구라 더 빨리 친해졌다.
유 : 난 당시에 베이스 치던 여자 멤버와 동갑이었다. 뭐 친구끼리 친해지는 거 아니겠나(웃음). 무대도 함께 서면서 서로 많이 친해졌고, 두 밴드 모두 해체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기분 좋다.
김 : 나이대도 비슷하겠다 팀 안에서의 고민도 서로 이야기하곤 했다.
유 : 그리고 우리가 해머링의 음악 자체를 많이 좋아한다. 특히 우리랑 처음 알고 지내던 시절엔 뉴메탈 느낌으로 지금보다도 강력하고 놀기 좋았다. 물론 지금의 해머링 음악도 좋다.
Q. 2집 준비가 한창이라고 들었는데 작업현황이 어떻게 되는가.
유 : 2집이 진짜 힘들었다. 곡 좀 만들면 멤버가 나가고 그러니까.
김 : 여튼 어떻게 어떻게 끌고 왔다. 믹싱 거의 95% 정도 됐고. 아마 곧 마스터링 된 곡을 손에 받지 않을까 싶다. 대만 쇼케이스가 6월 20일이라 그 전엔 발매까지 다 끝내야 해서 아주 바쁘다.
Q. 전작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을 두고 있는가.
김 : 사운드가 확실히 좋아졌다는 게 멤버들 공통 의견이다. 1집이 믹싱이 많이 아쉬워서 그 부분을 많이 보완했다. 또 1집은 곡 구성이 복잡하고 프로그레시브한 성향도 있는데, 2집은 약간 현대적으로 바꿔놨다.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비교적 간결하게 진행된다.
유 : 1집에 비해 직관적으로 듣기 좋다. 대중성에서 좀 더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Q. 앨범 제목이나 싱글 발매일 등 스포일러할 내용은 없나. 도중 오프라인으로만 싱글을 공개하는 특이한 시도도 했는데.
김 : 싱글컷은 안 할 생각이다. 오프라인 공개도 사실 계획에 없었다.
유 : 어떤 시도였다. 말한대로 믹싱에 아쉬움을 느끼고 스튜디오를 바꿨는데, 그곳에 맡겨도 괜찮을지 확인차 믹싱 작업을 마친 걸 오프라인에서 내놓게 된 것이었다. 스튜디오 세븐이라는 곳인데 그때 작업이 만족스러워 정규 10곡을 모두 맡기게 됐다.
Q. 다소 여담이지만 미디안은 익스트림 밴드 치고 러닝타임 6~7분이 넘어가는 대곡은 보기 어려웠다. 이번에는 혹시 그런 곡을 들을 수 있는가.
유 : 이번에도 없고, 앞으로도 잘은 모르겠다. 일단 그렇게 긴 곡이 싫다. ‘대곡을 만들지 말자’고 정해놓지는 않았는데.
김 : 나도 엄청난 대곡보다도 3분에 끊어서 너무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 사실 늘리는 건 어렵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걸 가감없이 표현하면 20분이라도 못 만들겠나. 짧은 시간 안에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게 어렵지. 우리 평균 러닝타임이 5분 30초 정도 되는데 이것도 너무 길지 않냐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지루하진 않은데 좀 길더라 하는. 그냥 선택의 영역이다.
Q. 작품 외에 투어나 공연 등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해달라.
김 : 올해는 앨범이 나오면 공연에 집중하려고 한다. 2집이 작업되는 기간이 길어진 건 사실 사운드적인 완성도 때문이고, 곡에 대한 작업은 계속하고 있다. 내년, 내후년에 또 정규나 EP를 목표로 하고 있다. 쉬진 않고 있다.
유 : 크게 정해놓은 계획은 없다. 일단 중요한 건 당장 내는 거니까.
Q. 마지막으로 독자와 팬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유 :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의 미디안이 좀 더 완성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테니 기대해달라. 좀 다양한 분들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리 과제라 생각한다. 남들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거. 응원해달라.
인터뷰 : 유하람
사진촬영 : SONG FOR HER
- 미디안 'Falling For Freedom'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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